한경비즈니스

“사모펀드처럼 보고 히타치처럼 바꿔라”…한국 제조업의 생존전략

“사모펀드처럼 보고 히타치처럼 바꿔라”…한국 제조업의 생존전략

  • 2025년4월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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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처럼 보고 히타치처럼 바꿔라”…한국 제조업의 생존전략

한국 경제의 근간인 제조업이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했다. 조선·철강·자동차·석유화학 등 한국 경제를 지탱해 온 주력 산업군 상당수가 이미 중국에 추월당했거나 중국과의 경쟁 심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석유화학과 철강, 배터리 등 주력 산업이 중국발 공급과잉과 원가 경쟁력 약화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경제성장이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피크 코리아’ 경고음도 커지고 있다. 제조업 위기 때문이다. 트럼프 2기 관세 폭풍,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 인구구조 변화 속에서 수출주도형 성장 모델이 한계에 직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2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인 14%의 두배에 이른다. 총수출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83.5%로 높다. 경제성장 동력이던 제조업 위기로 국내외 기관들도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줄줄이 낮추고 있다. OECD는 올해 한국의 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1%에서 1.5%로 끌어내리면서 제조업 수출의 성장 기여도가 약화하고 있다고 짚었다.

최정수 베인앤드컴퍼니 대표 파트너는 “한국은 제조업 기여도가 큰 산업 구조와 함께 무역 수출 의존도와 자원·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아 이러한 제조업 위기에 더욱 크게 노출돼 있다”며 “수출 중심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기업들이 G2(미·중)의 무역 분쟁에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어 어려움이 크다”고 진단했다.

문제는 위기가 단기적 충격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지속적이며 복합적인 흐름이라는 점이다. 복잡하게 얽힌 산업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제는 기존의 내부자 관점이 아닌 외부자 시각의 ‘제3자적 관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中 경쟁에 美 관세까지…엎친 데 덮친 한국 제조업

과거 자본 여유 시기에 과투자된 설비 증설은 투자 효과도 거두지 못한 채 공급과잉의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저출산·고령화 등 급격한 생산 인력 감소도 한국의 제조업 경쟁력을 위협하는 요소다.

여기에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글로벌 무역의 불확실성이 심화하며 제조업 위기를 가속하고 있다. 최 대표 파트너는 “한국 제조업은 원래도 죽을 만큼 어려웠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정책 불확실성이 더해지며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 됐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위기 원인은 중국의 부상이다. 최 대표 파트너는 “한국 경제가 1980년대 고도성장 이후 중국의 고도성장 시기에 인접국으로서 수혜를 가장 많이 봤다. 한국의 가장 중요한 수출시장이었던 중국 시장이 수요둔화와 자급률 향상, 미·중 갈등과 탈세계화 등으로 사실상 막혔다”며 “이제 중국은 수출시장의 가장 큰 경쟁자가 됐다”고 설명했다.

최 대표 파트너는 “한국 제조업의 구조적인 유니크한 특성이 글로벌 트렌드 변화에 직격탄을 맞아 안 좋은 쪽으로 가고 있지만 한국 제조업이 충분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치, 경제, 관세 등 모든 것이 불확실하지만 한국 제조업이 우하향할 거란 전망만은 가장 확실하다”고 강조했다. 제조업의 위기는 인구, 경제, 산업 구조를 포함한 거시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향후에도 지속될 전망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3자적 시각’으로 보면 위기 해법 보인다”

글로벌 평균보다 낮은 한국의 GDP 성장률은 투자심리 위축, 외국인 자금 이탈, 기업 실적 기대치 하락, 리스크 프리미엄 확대 등으로 한국 주식시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에 따라 증시 밸류에이션이 낮아지고,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커지며, 장기적으로는 저성장·저평가 구조가 고착될 위험이 커지고 있다. 제조업이 휘청인 영향이다.

최 대표 파트너는 제조업 위기 극복을 위해선 원가 경쟁력 혁신, 마케팅·영업수익 극대화, 투자 사업 관리와 함께 현금흐름을 최적화하는 사업 포트폴리오 최적화, 리밸런싱, 인수합병(M&A) 등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들이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관찰자 시점’으로 포트폴리오를 바라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사모펀드 등 재무적 투자자의 시각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보면 보다 객관적으로 원가 혁신, 구조조정, 마케팅 수익 극대화 등을 할 수 있으며 구조적으로 계속 드라이브를 걸 수 있다는 것이다.

최 대표 파트너는 “사업을 30년 이상 해온 오너 기업들은 사업 매각과 구조조정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더 좋은 주인에게 팔려 더 경쟁력 있게 운영되면 경제계에도 선순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비핵심 사업을 매각해 신사업 투자 재원을 마련해 더 잘할 수 있는 것에 역량을 집중하는 것도 포트폴리오 재편의 한 방법”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日 히타치 부활’에서 배우는 교훈

일본 히타치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히타치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8조원이 넘는 대규모 적자를 낸 이후 파산 위기에 내몰렸다가 15년에 걸친 포트폴리오 재정비를 통해 부활에 성공했다.

제조 중심에서 서비스 중심의 디지털 기업으로 전환한 것이 주효했다. 사업구조 정리 과정에서 22개에 달하던 상장사를 정리하고 IT와 서비스 분야에 집중하기 위해 비핵심 사업을 매각, 30건이 넘는 M&A를 진행했다.

최 대표 파트너는 “제조업에서 포트폴리오 재조정을 할 때 리밸런싱과 리스트럭처링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히타치의 경우 15년에 걸친 리밸런싱으로 한번 팔고 끝나는 비즈니스 모델을 제조업의 서비스화를 통해 정체성을 확 바꿔 버렸다”며 “제품을 팔 때 한번 돈 받고 끝나는 사업이 지금 위기라면 그런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역적인 포트폴리오나 리밸런싱에 대한 고민과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경영자들이 사모펀드 등 객관적인 제3자 시각으로 사업이 호흡기를 뗄 정도인지 볼 필요가 있다”며 “객관적인 진단으로 M&A를 통해 무적으로 만드는 전략 또는 포트폴리오 조정으로 남아 있는 회사 중에 1등이 될 수 있는 ‘라스트맨 스탠딩’ 전략도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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